왜, 그럴 때가 있다. 에세이가 당기는 그런 날. 그런 날 가볍게 집어든 책이다. 저자 소개와 제목만 봐도 대략 어떤 글들이 펼쳐질지 예상은 되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고 그런 건 아니다. 눈이 가는 몇 개 꼭지만 발췌해서 읽었는데 그중에 몇 구절만 꼭꼭 씹어본다.
1.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성숙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 부모는 자식이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외적 대상이다. 부모보다 더 뛰어나고 월등한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의 삶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또 어느 부모이건 자식에게 미움을 받는 시기가 있다. 자식에게서 미움받지 않는 부모는 없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있다.‘ 였다. 나는 사춘기가 없다시피 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속 썩이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 성적도 웬만큼은 좋았고, 반항이나 비행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으며 교우관계도 둥글둥글, 가끔 임원 같은 걸 하며 그냥저냥 무난했다. 부모님은 친척들을 만나면 항상 이런 나를 자랑했다. 나는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난 내 자아가 늦게 생긴 것 같다.
그런 내가, 요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시작은 남편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어떤 면에서는 나와 참 다른 사람이다. 특히, 남편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모에게서 빨리 독립했다. 남편은 부모를 미워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위 인용구처럼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을 찾아냈다. 부족한 부모의 모습을 인정하고 본인은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해서 현재 상황에 맞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그렇기에, 지나온 길에 후회가 없는 편이다.
나는 좀 다르다. 독립이 늦었고, 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생각하는 시간이 매우 적었다.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 사회에서의 내 한 사람 몫을 위한 노력들을 그간 해왔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 알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했는지 의문이다. 그러던 내가 부모가 되고, 한 아이를 하늘에 보내고 다시 한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부모가 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다 보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이어졌다. 또 내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간 막연하게 느끼고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생각들이 이어지고 깨닫게 되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아주 늦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며 내 얘기를 잘하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늦게라도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와 상관없이, 부모에게서 벗어나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나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변해 가는 것도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 기준에 휩쓸려 다니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중략)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부응하여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원래도 난 유행과는 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냥 왠지 남들
다 하는 거라면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이 아니라 왠지 하기 싫은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그냥 거꾸로 가고 싶은 건지 뭔지, 한때 다들 플렉스거리며 소비를 과시할 때 나는 왠지 돈을 허투루 쓰기 싫었다. 욜로가 유행할 때도 진짜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의문부터 들었다. 그렇다고 짠순이는 아닌 게, 근래 유행하는 절약 트렌드에는 또 동참하기 싫었다. 청개구리인가…
생각해 보면 이런 내 성향은 투자할 때 조금은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남들 다 좋다고 하는 건 왠지 사기 싫고 레밍떼가 된 것 같아 불안하다. 한때 엔화로 TLT 매수하는 유행이 불었는데 이런 성향 때문에 난 그렇게 투자하지 않았다. 남들이 별로 관심 없는데 좋아질 것 같아 보이는 곳엔 흥미가 가고 매수를 하더라도 비교적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주목받는 성장주보다 주로 시클리컬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좋아한다. 뭐, 지금 대다수가 있는 주식도 정리해서 한국시장을 떠나 미국주식을 안전하게(?) 매수한다는데, 나는 갸우뚱한다. 지금 이 환율에? 지금 이 가격에?
아무튼, 잠깐 옆으로 샜는데,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하는 사람들을 가끔 아니, 자주 본다. 뭐, 자기 능력껏 소비하면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은 그게 아니니 문제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해서 소비를 한 이유는 다른 사람이 좋게 볼 것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 기준에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도 20대 초반에 혼자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왔을 만큼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이 주는 이점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여행마저도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 남들 따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남들이 좋다는 숙소에, 남들이 좋다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SNS에 인증을 한다.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겠으나,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을 가는 사람들과 그 즐거움의 무게가 같을까?
한때 사람들은 왜 그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좋게 볼 무언가에 더 몰두한다. 그런 곳에 돈을 더 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변한 것은 우리 경제가 호황기를 지나왔기도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이런 경향도 한몫한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남는 게 없다. 가벼운 주머니와 헛헛한 감정뿐이다. 그리고 SNS 상에는 항상 나보다 잘나고 잘 사는 사람들 천지이기 때문에 만족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또 이 가치 기준이라는 게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첫째를 먼저 보내고 난 후에 내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모두 흔들렸고, 정말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고, 또 그 생각이 알게 모르게 사회에서 주입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남들의 기준보다 내가 생각한 가치들이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어쩌면 나도 이전에는 타인의 가치 기준에 맞춰 살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조차도 인생의 어떤 이벤트 때문에 흔들리기도 한다. 하물며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이라면 그 얼마나 취약하고 흔들리겠는가. 그러니 다른 사람의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그 기준을 잘 세워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부응하며 살아야 한다.
결국 제대로 사는 삶이란,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삶이다. 저자의 말처럼,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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