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이야기

버티는 마음 | 정태남

by 세상읽는토끼 2022. 8. 5.
반응형

근 몇 년 간 경제와 역사책을 주로 골랐던 나의 선택에 잠시 제동이 걸렸다. 도저히 그 책들이 읽어지지 않았다. “버티는 마음”은 “괜찮아, 엄마 여기 있을게”에 이은 올해 두 번째 에세이 책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제목에 이끌려 읽어 내려갔다. 버티는 마음… 지금 나에겐 무엇보다 그게 필요한 것 같아서… 물론 나와 비슷한 처지는 아니지만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는 알겠다. 묘하게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추측컨대 2022년 현재 47-48세 정도 되는 듯하다. 그 저자가 살아내 온 세월이 담겨있다. 읽다 보니 어떤 정치관을 가졌을 지도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조선업. 시클리컬이다. 한 때 대호황이었고 사이클을 거치면서 지금은 아수라장이다. 산업현장에 있지 않은 나는, 이를 몇 개의 차트와 이야기들로만 접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 직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선 나는 잘 몰랐다.

나의 남편도 한 때 저자와 비슷하게 조선업에서 도면 설계 일을 했었다. 한창 조선업이 호황이었다가 저물기 시작할 때였다. 남편은 그 업에서 나오기로 결정했고 부모님의 반대를 뒤로 하고 나름 대기업이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회사에 들어갔는데 동료들 중 아주 잘 풀린 케이스이다. 남편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운도 따라줬다. 당시 남편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편이 나오고 난 후엔 임금도 체불되고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몇 명은 남아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불안한 미래를 끌어안고 남아있는 것, 나는 가능할까?

하여간 남편은 그 업을 그만두었고, 저자는 고군분투했다. 본인의 업과 전문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 생활이 나아지진 않았다. 보면서 생각하건대, 첫째, 인생의 변환점을 만들고 싶다면 어느 순간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잠깐 멈춰 서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보고 계속 이 길을 갈 것인지, 새로운 길을 가 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둘째, 자격증을 따고 내 능력을 배양해서 자기 계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산업의 향방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투자 공부는 비단 재테크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로에 있어서도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낸 저자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다. 다시 재취업을 통해서 본래의 생업으로 돌아가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 책을 출판한 것은 작은 아니, 큰 변환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또다시 그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서 책에 말한 것처럼 돌아간 이 모습 또한 나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합리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기 합리화를 하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이렇게 한 발자국을 떼었듯,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길 응원을 보내고 싶다.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산업 현장에서 겪어내며 살아온 저자. IMF를 겪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은 불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난 이 시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채찍 효과의 끝단에 있는 국가이다. 그만큼 사이클을 제대로 탄다. 즉,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었다는 말이다. IMF 이후 몇 번의 불황과 호황이 지나갔다. 그 긴 시간 동안 나에게, 내 가정에 불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면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변화를 만들어내기란 더욱 힘들고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또다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묻는 저자에게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아직 마흔도 안 된 나도 아직 여러 번 이러한 물음과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에… 예상치 못한 비극이 닥쳐 정신을 못 차리는 요즈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에게 참 시의적절하다.

버티는 마음… 버틴다. 버티는 것… 그것이 바로 필요한 지금의 나.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그래도 열심히
살면서 두 아이도 키워냈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엄마, 아빠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고 아장아장 한 걸음씩 떼어보는 아이의 모습도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너무도 힘든 시간을 마주하고 있고, 그 시간을 오롯이 버텨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 비극을 마주하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이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 시점에서 마흔이 넘은 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니 나도 덩달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일을 겪고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버텨낼 수 있을지 정말이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책 속의 한마디

  • 이 책은 지나온 시간만큼 살아갈 시간이 남은 우리를 위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 존재인가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썼다.
  • 결핍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나에게 결핍은 결코 꿈이 될 수 없었다.
  • 풍요로운 이 시대 우리에게는 어떤 꿈이 있느냐고.
  • 그렇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오늘 내 인생의 가장 빛나던 경력을 접고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 마흔이 넘어서야 생각한다. 이번만은 다른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긴 세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온 결과가 오늘이라면, 이제 다가올 내일을 위해 어제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치열하지 않고, 나를 존중하며 깊이 돌아보는 산책 같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 그날 내 인생에 누구보다 인색했던 당사자가 나 자신이란 것을 직면하는 순간, 가슴이 뻐근하기 아려왔다.
  • 마흔을 넘어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선 내게 삶은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한 번 결정의 기회가 주어졌다. 내 마흔의 선택은 하고 싶은 일, 추억이 될 일, 훗날 아름다운 교훈이 될 일이어야 한다.
  •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오늘을 살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

    버티는 마음 | 정태남 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