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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정상훈

by 세상읽는토끼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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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앓았던 저자의 에세이다. 먼저 읽었던 종양내과 의사의 에세이와 다르게 이 책은 의사의 책 같지가 않다. 웬 작가가 여기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정말 맛깔나게 글을 쓰신다. 같은 현장을 표현하더라도 저자의 색깔이 있다. 꼭 소설처럼 입체감 있는 등장인물 하나하나 그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읽으면서 내내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고 부러웠다. 책을 많이 읽어서일까, 타고난 재능일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울증에 대한 나의 잘못된 생각을 알았다. 난 우울증이 기분의 문제라 생각했다. 은연중에 우울증을 질병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다 내 상황에 비추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어떻게 저렇게 떠날 수 있을까, 아내는 또 무슨 잘못인가 하며 처음엔 아니꼬운 시각으로 쳐다보았다. 글을 읽으며 이내 깨달았다. 그건 나의 짧은 생각과 오지랖이었음을. 이 책에 나타난 건 저자 인생의 일부분뿐인 것을, 무얼 안다고 내가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재미있게 읽었지만 크게 기억나는 에프소드는 없는 것 같다. 에피소드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읽었다. 그 문장들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몸은 시간을 통해서만 배운다.”
“사람이 죽는다고 시간이 멈춰 서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지만 에볼라와 싸우던 어린아이들의 죽음은 나를 눈물짓게 했다. 과하게 감정 이입한 걸까.

“열과 통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맹렬하게 오마르의 작은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거의 절정에 달했다.

“동이 트기 전, 오마르는 세상을 붙잡던 손을 놓았다.”

조그마한 내 아들의 손이 생각났다. 세면대에서 엉덩이를 씻기느라고 있으면 떨어질까 내 옷깃을 꽉 붙잡던 그 조그마한 손.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무언가 답을 찾으러 떠났다가 질문조차 지워버린 채 돌아온 것 같다. 내 현실이 버거워 그런 저자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문장을 감탄하며 읽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한 것 같다.




결핵과 에볼라와 싸운 뒤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코로나19 현장에 있었다. 그것도 쪽방촌 찾아가는 선별 진료소에. 엄청 대단한 위인은 아닐지라도 저자는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있어주었다. 그것도 열정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면 뭔가 현실로 돌아가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무엇이 저자를 쪽방촌으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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