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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 신순규

by 세상읽는토끼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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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런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책이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자가 인생을 잘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두 눈이 안 보이는데도 저렇게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고 또 저렇게 잘 되었는데 나도 힘내야지! 이런 생각을 할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내가 어린 시절 오체불만족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이지 않을까. 대단하다고 경외심을 보내고, 나도 열심히 힘내서 살아야지 다짐하고, 책에 나와 있는 저자의 긍정적인 생각을 따라가려 하고 기타 등등. 하지만 공통적으로 “장애가 있는데도…”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을 게다.

난 이 책을 표지에 있는 “일상의 기적” 같은 문구처럼 뭔가 내 삶의 환기를 하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다. 저자처럼 두 눈이 안 보이는,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방법과 길을 찾아 어둠 속에서 헤매다 등불을 만난 것처럼 읽기 시작했다. 두 눈이 안 보이는 저자가 어떻게 살았길래 저렇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지 너무 궁금했다.

처음 저자가 미국으로 유학 간 이야기와 성장기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놀라움과 희망으로 읽었다. ‘우와, 어쩜 이렇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까, 그리고 그 좋은 기회를 참 잘 살렸구나.’ ‘교육을 잘 시켜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잘 길러 준다면 시각장애인이라도 잘 커 줄 수 있겠구나.’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기적 같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던 저자의 삶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시각 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살아왔던 그 고단한 노력은 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 그 노력을 본다 해도 이러한 기회와 운은 정말 천운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신앙대로 이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저자의 책을 틈틈이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내 마음속을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어쩌면 괜찮겠다는 마음과 함께.

하지만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나는 너무 슬펐다. 2000년대 들어 저자는 24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서울맹학교 시절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24년 만에 방문했건만 시각 장애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여전히 교수, 교사, 목사 같은 소수의 직업을 빼놓곤 90%가량은 안마사, 침술로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그마저도 이제 정안인들도 뛰어들어 예전보다 더 힘들다고.

관련 이야기는 남편이 찾아본 바와도 통했다. 현재는 그 시점에서 다시 십 수년은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역시 안마나 침술로 여유롭게 살긴 어렵고 그나마 정안인이 차린 안마시술소에 바지사장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다가 마음이 아파 그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국 일류대 여러 곳을 합격하고 이미 월가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일하고 있는 저자가 한국에 온다면 어떨까? 한국에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에 한국 증권사에 지원해 본 저자의 경험도 책에 담겨 있다. 결과는, 결국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의 한계는 넘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답정너” 같은 것이랄까.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덮은 나는, 또다시 절망과 슬픔에 휩싸여 어둠에 내던져졌다.

이런저런 내 생각과 느낌과는 별개로 저자의 인생에 찬사를 보낸다. 정말이지 부러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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