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7월에 걸쳐 경기민감주들을 정리했었다. 배당수익률이 높을 때 매수했지만, 아직 오르지 못했던 해외 석유 관련 주식(S-Oil은 작년 5~7월 경기민감주들을 정리할 때 함께 정리했고, 나머지 미국과 캐나다의 석유 관련 주식들은 손대지 않은 채로 보유)과 배당금을 받으면서 가져갈 가격전가력 있는 소비재 주식들과 제약 바이오 주식 정도를 남겨놓고 나머지 포트폴리오는 채권 매수시기를 기다리며 달러로 환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작년 10월 이후 장기 채권 ETF를 천천히 분할 매수하여 경기 바닥까지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그 맘 때쯤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아 채권 매수 시기를 미루고 지금까지도 채권을 의미 있는 비중으로 매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일주일 동안 석유 주식을 포함하여 주식 비중을 좀 더 축소하고 현금(달러) 비중을 더욱 늘렸다.
원래 시장이 무너져도 계속 가져가려고 계획했던 주식 중의 일부를 1월 FOMC 파월 의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어느 정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정리한 것이다.
석유 주식(XOM, SU, SHEL, VET) 매도 이유
2020년 3월, 석유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까지 갔다 왔었는데 어느새 WTI의 가격이 $90을 넘어섰다. 석유 가격이 마이너스를 찍을 때 좀 더 용기 있게 큰 비중을 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포트폴리오의 한 축을 석유가 담당했던 점에서는 만족한다.
2020년 3월, 9~10월 이렇게 두 차례 석유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했었다. 덕분에 매우 싼 가격에 매수할 수 있었다. 배당수익률도 높고 사실상 석유 가격이 $60~70로 다시 하락한다 해도 배당금을 별로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기업들이다. 내가 이 기업들을 매도하게 된 이유는 기업들의 개별적인 이슈 때문이 아니다. 전체적인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더욱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1. 예상보다 빨리 유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한 주간 마이너스 채권이 대규모로 사라졌다. 사실 마이너스 채권은 존재할 수 없는 채권이다. 내가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어떻게 줄 수 있는가. 그럼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다량의 마이너스 채권들이 존재했었고, 이는 내가 채권 ETF를 매수하는 데 주저한 이유가 되었을뿐더러 유동성이 넘쳐흐르는 버블장임을 암시했다. 그런 마이너스 채권들이 최근 여러 금리들이 양전환을 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이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마이너스 채권들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들이 있다는 것인데, 며칠 전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 등의 채권 딜러들도 우량 회사채를 손절하고 있다는 기사이다. "물가 상승 = 유가"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물가와 유가는 떼놓을 수 없어 내가 석유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물가 상승을 헷징하는 모양새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내가 정리하기로 한 것은 이렇게 유동성이 빨리 사라지면 전체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고, 석유 주식도 시장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시차의 문제이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석유 가격 전망이 계속 상향되고 있다.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전망치는 계속 상향 수정되고, 내리면 내릴수록 하향 수정되는 것이 소위 "전망"이라는 것이다. 마이너스 석유가격을 보고 나서 많은 석유 회사는 헷징을 할 정도로 석유 가격 전망치가 좋지 않았다. 그런 석유 가격의 전망치가 요즘은 $100를 넘어서서 $120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자주 보는 경제지의 산업과 주식 동향에 첫 부분을 차지한 것을 본 게 벌써 몇 번째는 되는 것 같다. 통상 내가 모멘텀 투자를 할 때 이렇게 신문의 첫 부분에 기사가 나올 때쯤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3. 큰 손들의 에너지 섹터 정리 소식
석유 가격은 사실 수요와 공급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했다면 과거의 나처럼 순진한 것이다. 이미 석유 뿐만 아니라 많은 원자재 시장은 선물이 존재하고, 그 선물에 투자하는 투자자(혹은 투기자)들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paper oil이라고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에 맞춰 이슈들이 나왔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조그만 개미인 나는 충분히 싸게 사고 적당히 욕심을 부리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
트위터를 살펴보다가 아래 트윗을 보았는데, 내가 석유 주식들의 수익률에 취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과거에 어디였던가, 석유 가격이 $100를 넘어서면 경제가 버티기 힘든 수준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 언저리까지 오르게 되면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4.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 완화 소식
이번주야 전쟁 내겠다는 러시아의 엄포에,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국민들을 철수시키는 여러 선진국들의 움직임에 잔뜩 전쟁 분위기가 달아올랐지만, 저번 주만 해도 약간 긴장이 완화되는 소식이 있었다. 사실 바이든이나 시진핑의 입장에선 여기서 석유가 더 올라봤자 좋을 게 없다. 특히나 바이든의 지지율은 석유 가격이 올라갈수록, 물가가 올라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시진핑도 다를 건 없을 것이다. 석유 가격의 상승은 대부분의 물가 상승을 자극하니까. 먹고사는 문제를 건드리는 리더는 무사할 수 없는 법이다. 푸틴이야 뭐... 무슨 생각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동안 오른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으로 러시아는 지금이 땡깡부리기 가장 좋은 시절인 것을.
지정학적 이슈로 단기적인 모멘텀을 보고 매매할 생각은 없는데, 이미 석유 가격이 많이 올라 있는 상태기 때문에 긴장이 완화되면 숏을 잡고 있는 큰 손들도 있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큰 폭으로 조정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내가 보는 보조지표들에서 석유 가격 고점이 임박했다.
아직 고점이 꺾이고 매도시점이라고 찍히진 않았지만, 보통 매도 시점이라고 찍힐 때는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보조지표 상 내가 수익실현할 정도로 높은 지점에 있었고, 앞서 다른 이유들과 함께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충분한 수익이라고 생각했다.
6. 각종 상품들의 재고가 쌓이고 있다.
물론 현재 대부분의 원자재는 재고가 없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석유의 공급을 늘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2020년 내가 석유 주식을 매수했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는데, 미국의 시추공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지금도 석유 공급은 크게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다른 상품들의 재고이다. 중간재, 완성재들의 재고가 쌓이고 있다. 이는 경기 하방압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기와 석유 가격이 100% 동조화되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수준으로 함께 움직인다. 경기 호황기가 끝나감을 암시하는 재고들의 증가 소식은 롱 포지션을 유지하기에 적절치 못하다.
그럼에도 석유 주식 매도를 망설이는 이유
1. 갑자기 전쟁 분위기가 고조될 경우 석유의 슈팅이 나올 수 있다.
금요일 밤 전쟁 분위기가 전세계를 휩쓸기 전 석유 주식들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이 이유를 메모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의 슈팅이 더 나올 것 같은 동물적인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이다. 거기다 보조지표 단기 흐름 상 반등이 나올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이 드니 이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의 문제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비중을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토요일 새벽, 전쟁 이슈가 올라오면서 석유 가격의 급등이 나오는 것을 보며, 미련 없이 에너지 섹터의 남은 비중 모두를 정리했다.
2. 석유를 포함한 전체적인 원자재 재고들이 낮은 수준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인들의 과소비이든, ESG 흐름이든 현재 원자재들의 전체적인 재고 수준이 낮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낮은 재고를 이유로 위로 슈팅이 나와도 전혀 반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체 포트폴리오를 좀더 위험회피적으로 운용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수익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기로 한다.
3. 정이 들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데... 팔기 싫다. 하지만 그동안 나도 인간 지표임을 여실히 경험해왔기에... ㅠ_ㅠ
석유 관련 주식 외 종목들 먼저 정리
석유 주식들을 정리하기 전에 다른 주식들도 정리했는데, 이번에 정리한 종목들은 화이자(PFE), 머크(MRK), 존슨앤존슨(JNJ), 프록터앤갬블(PG)이다. 머크를 제외하면 이들은 배당금을 받으며 꾸준히 모아갈 생각으로 매수했던 종목들이다. 그런데, 최초 매수 후 꾸준히 추가 매수를 하지 못했던 것은 조금 아쉽다. 계속 매수했다면 수익률은 지금보다 떨어져도 수익금은 더 컸을 텐데...
아무튼, 코로나19는 적어도 자산시장에서만큼은 이제 끝났다고 보고 코로나19의 수혜를 입었던 종목들은 이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백신 때문에 매수한 종목들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익에 제법 반영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지난번 고점 찍을 때 같은 생각을 하며 정리를 하려다가 처음 매수할 때 배당금 받으며 가져가려고 했던 생각 때문에 참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을 바꾸게 된 점이다.
프록터앤갬블도 매도하기 아까운 종목이지만 이 종목은 2020년 충분한 저점에서 산 종목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고평가 된 미국 시장에 있는 주식을 위험을 무릅쓰고 내가 매수한 평단가로 가져갈 메리트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함께 정리했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매수 기회를 줄 것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오래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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